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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6 | 제18권 4호 <통권70호>

2025년 겨울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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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섯 살

유형준

유형준 CM병원

안데스산맥 페루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다섯 살 소녀의 배가 점점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은세공장인 부모는 종양일지도 모른다고 근심하며, 아홉 남매 중 하나인 리나 메디나를 데리 고 피스코(Pisco)의 병원을 찾았다.

정밀 검진 후, 의사들은 충격적인 진단을 내렸다. 리나는 임신 7개월이었다. 진단받은 지 6 주 후인 1939년 5월 14일, 리나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2.7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 다. 제왕절개는 그녀의 골반이 작았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리나 마르셀라 메디나 데 후라도 (Lina Marcela Medina de Jurado, 1933년 9월 23일 출생)는 정확히 5년 7개월 21일의 나 이로, 역사상 가장 어린 산모가 되었다. 수술을 집도했던 헤라르도 로사다(Gerardo Lozada) 박사는 리마(Lima)의 전문의들에게 이 사실을 확인시켰다.

소식은 페루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전해졌다. 1939년 5월 16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제1면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다섯 살 반 산모와 아기, 건강하다.”

리나 메디나의 사례는, 페루 의료 당국, 특히 저명한 의사이자 연구자이며 프랑스 과학 아카 데미 회원인 에드문도 에스코멜(Edmundo Escomel)[그림 1]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피스코(Pisco) 마을에서 메디나를 처음 진찰한 의사 로사다 박사는 수도 리마(Lima)의 의학 아카데미에 이 사례를 정식으로 보고했다. 이어서, 에스코멜은 프랑스 의학 저널인 《라 프레 스 메디칼(La Presse Medicale)》에 메디나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적 내용을 편지 형식으 로, 다섯 살짜리 임산부의 흐릿한 사진과 함께 투고했다.

그림 1. 에드문도 에스코멜

프랑스 의학 저널인 《라 프레스 메디칼》은 1939년 5월 31일, “세상에서 가장 젊은 엄마(La Plus Jeune Mère du Monde)”라는 제목으로 다섯 살 임산부의 의학적 상황을 게재하였다[그 림 2]. 초경이 생후 8개월에 있었고, 산모의 유방이 완전히 발달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 다. 아울러 조숙한 사춘기 때문에 완전히 성숙한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실려 있었다.

그림 2. 임신 7개월 반의 메디나. 임신 중에 촬영된 유일한 사진(1939년 4월 초순쯤). La Presse Medicale 1939;47(43):875.

1939년 11월, 《뉴욕 타임스》는, 페루에서 메디나를 검진했던 미국 공중보건국 부국장의 말 을 실었다.

“의사로서 체험한 가장 놀라운 일이다. 어린 메디나는 아기보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이태 후, 미국 아동 심리학자 폴 코삭(Paul Kosak)이 리나를 진찰했다. 코삭은 《뉴욕 타임 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리나의 지능은 정상 수준이며, 남자 아기 또한 완벽하게 정상이다. 아기는 신체적으로 일반 적인 메스티사(Mestiza, 스페인계 인디언) 아기들보다 더 잘 발달해 있다. 그녀는 아이를 남동 생처럼 생각하며,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여긴다.” [그림 3]

그림 3. 리나 메디나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리나는 피스코에서 자신을 진료했던 의사 헤라르도 로사다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헤 라르도라고 지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헤라르도는 열 살이 되어서야 메디나가 자신의 친어 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메디나는 어린 시절 리마의 로사다 병원에서 비서로 일하며 교육받았고, 이를 통해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에도 도움받았다. 메디나는, 헤라르도가 태어난 지 삼십삼 년 후인 1972년에, 결혼하여 둘째 아이를 낳았다.

헤라르도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안타깝게도 1979년 마흔 살에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로이터 통신 기사에 따르면, 메디나와 그녀의 남편은 당시 리마의 ‘리틀 시카고’라고 불리는 황폐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리나는 비교적 흔한 소아 조숙성 사춘기 질환의 극단적 사례다. 내분비내과 전문의는 어린 나이에 사춘기의 외적인 징후를 보이는 환자들을 진료한다. 전형적 사춘기 외적 징후에는 여 아의 유방 발달 및 월경, 남아의 생식기 비대 및 음성 변화 등이 있다.

여아의 경우 여덟 살 이전, 남아의 경우 아홉 살 이전에 이차 성징이 나타나면, 성조숙증으 로 정의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은 백인이나 히스패닉 어린이들보다 사춘기가 조금 일 찍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섯 살이나 일곱 살에 사춘기를 시작하는 여자 어린이는 드물다. 사춘기를 마친 다섯 살 리나의 사례는 처음이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까? 미국 인디애나 의과대학 소아 내분비과 교수 에리카 유그스터(Erica Eugster) 박사의 말 이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박사는 말을 이었다.

“그런 사례는 있지만 극히 드물다. 지난 십 년 동안 우리 병원에서 두 살 이하 어린이 네 명 에게 성조숙증 진단을 내렸지만, 이렇게 소문난 사례는 처음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나의 경우 생후 8개월에 초경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기록상 가장 이른 성조숙증 사례이며, 저는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리나의 담당 의사 중 누구도, 성 발달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생성하고 분비하는 뇌하수체의 종양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대부분 특발성 성조숙증이라 판단하였다, 단지 에스코멜 박 사만 뇌하수체 질환이 원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리나 메디나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1980년 내분비대사내과 3년차 레지던트 때였다. 『세 실 내과학(Cecil Textbook of Medicine)』 제15판(1979년 발간) 성조숙증 항목에 이런 짤막 한 기술이 있었다. “리나 메디나, 페루의 소녀로 다섯 살 반에 정상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그 후 사십 년, 리나 메디나가 헤라르도를 낳은 지 팔십육 년, 지금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질문 하나를 나누며 글을 맺는다.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당시 신문사 기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메디나에게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조심스레 물 었다. 메디나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도 메디나는 아버지의 신원이나 임신 당시의 상황을 결코 밝힌 적이 없었다. 에스코멜은 “메디나가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라며, 그녀 자신도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으리라 추측했다. 리 나의 아버지는 아동 성 학대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 필자 약력
유형준
유형준

시인(필명 유담), 수필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및 의료인문학 교수, 대한당뇨병학 회장, 대한비만학회장, 대한노인병학회장,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장. 한국의사시인회 초대 회장, 문학청춘작가회장, 의료와 예술 연구회장. 현재. 씨엠병원 내분비내 과장. 함춘문예회장, 쉼표문학회 고문, 한국의사수필가협회장, 의학과 문학 의 접경 연구소장.

  • 단독 저서 -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 시집 -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 산문집 - 『늙음 오디세이아』, 『의학에서 문학의 샘을 찾다』, 『글 짓는 의사들』, 『우리나라 최초 의사문인 포백 김대봉 문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