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bzine No.44 | 제18권 2호 <통권68호>
2025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Webzine No.44 | 제18권 2호 <통권68호>
2025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유형준 CM병원 내과
통풍은 가난한 사람의 집에 묵었고, 거미는 부잣집에 묵었다. 다음 날 묵었던 숙소에 관해 각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통풍이 먼저 말했다.
“내가 겪은 일 중 가장 심했어. 그 가난한 사람의 다리를 처음 만졌을 때 마음에 들었지. 그래서 거기서 쉬려고 했는데, 밤새도록 그가 발버둥 쳐서 도통 쉴 수가 없었지.”
거미가 말을 받았다.
“내가 부자의 방에 집을 짓기 시작하자마자, 하녀가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모두 허물어 버렸어.”
둘은 서로 집을 바꾸어 지내기로 했다. 며칠 살고 나서, 각자의 새집에 매우 만족하여 영구 거주지로 삼기로 했다. 가난한 사람은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았고, 통풍은 부잣집에서 부드러운 쿠션과 깃털 베개, 따뜻한 포도주 음료, 그리고 은은한 국물로 대접받았기 때문이었다.
- 「통풍 씨와 거미에 관한 우화」
의인화한 통풍과 그의 여행 동반자인 거미의 대화를 통해, 통풍이 상류층을 선호하는 이유를 우화로 은유한다. 9세기쯤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최초의 영문판은 청교도 리처드 호스(Richard Hawes)가 1634년에 쓴 의학 안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석고 상자』에 실려있다. 책의 전체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석고 상자 - 남성과 여성에게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불행과 일반적인 질병에 대한 다양하고 훌륭한 치료법 모음집』이다.
이 우화처럼, 통풍은 ‘군주들의 질병’, ‘귀족의 질병’으로 불렸다. 그 까닭은, 오랜 역사를 지닌 통풍은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절제 부족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시각은 통풍 또는 발가락 통풍을 의미하는 ‘포다그라(podagra)’라는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포다그라(Podagra)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의 바쿠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다그라’란 말 속엔, 통풍이 성, 음식, 포도주에 대한 과다한 탐닉의 결과라고 여긴 고대 로마 작가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통풍이 귀족의 표징이라는 생각은 기원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상세한 진찰, 꼼꼼한 기록 보관, 질병 치료에 관한 남다른 집중 등으로, 영국의 히포크라테스로 알려진 토머스 시드넘(Thomas Sydenham, 1624~1689)[그림 1]은 삼십 대부터 통풍을 앓았다. 당대의 최고 명의였을 시드넘도, 통풍은 부유한 상류층의 질병이기 때문에, 결핵이나 전염병과 같은 하류층의 흔하고 치명적인 질병보다 낫다는 관념을 격언처럼 반복하여 강조했다.
“하지만 저에게, 그리고 재산이 적고 능력이 부족한 통풍 환자들에게도 위안이 될 만한 점은, 왕, 왕자, 장군, 제독, 철학자, 그리고 다른 여러 위대한 인물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일러, 이 질병에 관해 더욱 특별한 방식으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을 더 많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을 더 많이, 죽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삶의 편의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혜택을 풍부하게 공급하시고, 넉넉한 사람들에게는 악을 동등하게 섞어 풍족함을 완화하시는 섭리의 정의와 엄격한 공평성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행복이나 불행 중 오로지 한 가지만을 누리지 못하고, 둘 다를 겪는 게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정해진 순리로 여겨집니다. 부연하면, 연약하여 스러지기 쉬운 우리가 선⦁악을 모두 경험하는 일은 극히 합당합니다. 이러한 합당은 현재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이치일 겁니다.”
16세기에서 18세기 문학에서 통풍은 질병이 아닌 치료, 심지어 질병 구제의 하나로 미화되었다. 심지어 통풍이 질병이라기보다는 치료약이라는 개념으로 까지 강화되어, 통풍은 다른 질병을 막아주는 마치 행운의 부적이라는 인식이, 16세기에서 18세기 유럽에 널리 퍼졌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그림 2]는 말년에 만성 통풍을 앓았다. 스위프트는 당대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통풍을 다른, 더 심각한 질병을 막아주는 보호력으로 여겼다.
스위프트는 지인 레베카 딩글리(Rebecca Dingley)에게 보낸 시 「벡의 생일」(1726)에서 이러한 통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스위프트가 ‘벡’이라 불렀던 레베카 딩글리는, 스위프트의 내연녀인 에스더 존슨(Esther Johnson)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스위프트는 「벡의 생일」에서 통풍이 다른 질병을 몰아내는 ‘수명을 연장해 줄’ 축복이라고 칭송한다.
마치 통풍이 머리를 꽉 잡으면
의사들이 환자의 사망을 선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통풍을 말단까지 몰아낼 수 있다면,
환자에게 기쁨을 주고
그의 수명을 연장해 줄 통풍을 칭찬합니다.
레베카에게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손과 발에 근심을 쏟는 레베카 말입니다.
- 「벡의 생일」 부분
통풍은 대부분의 다른 질병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질병끼리 서로 배타적이라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었다. 따라서 통풍은 다른 질환의 치료제 또는 백신이고, 더 심각한 질병에 대한 보험으로 여겨졌다.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도 “통풍은 다른 질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한다. 통풍을 치료할 수 있다면, 도리어 열, 마비, 뇌졸중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통풍을 질병이 아닌 치료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통풍 치료제가 없는 것도 당연하며, 완치되고 싶지도 않다.”라고 다짐까지 했다.
이런 맹신에 휩쓸려, 통풍이 없는 사람들도 통풍에 걸리고자 했다. 18세기에는 결핵이나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을 온천으로 보내 통풍을 얻어 다른 질병을 퇴치하고자 했던 의사들도 있었다.
또한 통풍은 최음 효과가 있다고 여겼다. 통풍이 최음제 역할을 한다는 최초의 기록은, 파비아의 히에로니무스 카르다누스(Hieronymus Cardanus of Pavia, 1501~1576)가 1562년에 쓴 『통풍에 대한 찬사』다. 의사이자 수학자였던 카르다누스는 격식을 갖춘 익살로 통풍의 은밀한 효능을 찬미하였다.
“비너스와 바쿠스, 그리고 향락의 향연에는 영원한 계약이 견제 역할을 하며, 통풍은 행복의 원인이기 때문에, 통풍으로 억제받는 사람들은 고통 자체를 제외하고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 통풍은 그들을 불임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력한 힘으로 비너스에게로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카르다누스의 『통풍에 대한 찬사』 이후 백 년이 더 쌓인 1693년, 네덜란드 법학자 게르하르두스 펠트만(Gerhardus Feltmann)은, 통풍 환자의 성적 능력은, 통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상에 누워 안정하는 것이 생식 기관에 미치는 배양 효과 때문이라고, 그 축복의 기전을 보태기까지 했다.
“통풍 환자가 아파서 억지로 등을 대고 누워있을 때, 정자의 통로가 신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리와 신장이 뜨겁고 염증이 있다는 것을 쉽게, 그리고 여유롭게 이해할 수 있다.”
귀족의 상징, 다른 질병을 퇴치하는 부적, 심지어 최음제. 수 세기 동안, 일반인도 의사도 통풍의 존재와 위세를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육류, 특정 해산물, 맥주 등에 비교적 많이 들어 있는 퓨린이 통풍 발생에 미치는 영향 등이 점차 밝혀지고, 퓨린의 대사산물인 요산이 혈액 속에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통풍의 진단과 치료 예방은 놀랍게 발전하였다.
특히 통풍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발전은 아마도 최초의 잔틴 산화효소 억제제인 알로퓨리놀의 개발일 것이다. 실제로 조지 히칭스(George Hitchings)와 거트루드 엘리언(Gertrude Elion)은 알로퓨리놀 등의 약물을 개발한 공로로 198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그림 3].
마침내 통속적 믿음이 대사적 실체로 바뀌었다. 통풍은 왕관을 벗어 내려놓고, 부자의 집을 나서야 했다.
실상이 모호할 때 보태어질 수 있는 신비함. 신비가 당장의 현상과 뒤범벅이 되어, 부와 권력의 징표로, 부적으로, 치료제로, 그리고 최음약으로 칭송받던 통풍. 통풍의 서사는, 한 질병에 관한 대중적인 인식이, 더구나 의료마저 적극 동참하였을 때,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으로 세상에 얼마나 크고 깊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제는 묘연한 역설의 화석(化石)으로, 오류의 우화(寓話)로 남은 찬가를 중얼거리며.
시인 (필명 柳潭(유담)) 및 수필가 /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 함춘문예회 회장 / 쉼표문학회 고문 /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 / 의학과 문학의 접경 연구소 소장
前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및 의료인문학 교수 /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 대한비만학회회 회장 / 대한노인병학회 회장 /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 문학청춘작가회 회장 / 의료와 예술 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