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bzine No.45 | 제18권 3호 <통권69호>
2025년 가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Webzine No.45 | 제18권 3호 <통권69호>
2025년 가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박이병 가천대학교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연이은 폭염과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 힘들었던 8월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의 초입, 9월입니다. 9월이 되면 9라는 숫자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는데요,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독 싫어하는 숫자가 바로 9 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흔히 얘기하는 저주의 숫자 9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는 얘기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하나의 가십거리로 충분히 얘기라 나름대로의 가치는 있을 거 같습니다.
2008년 개봉된 <아이언 맨 (Iron Man)>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토니 아버지의 회사 동업자이자, 이 영화의 악당인 오베디아 스탠이 주인공 토니의 가슴속에 박혀 있는 아크 리액터(핵 원자로)를 꺼내면서 하는 대사이다.
“너는 9번 교향곡”이라고? 뜬금없이 교향곡? 이 대사가 왜 나왔지? 클래식 음악 영화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작곡가가 9번 교향곡을 쓰면 죽는다는 믿음이 있는데, 오베디아는 아크 리액터가 토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암시한다. 즉, 너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멋들어지게 대사하고 있다. (이런 대사를 보면, 마블 영화가 은근 심오하고 철학적인 뭔가 있는 거 같다.)
정명훈 &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1악장
“9번의 저주” 시작(?)인 베토벤의 9번 교향곡 1악장을 우선 들어보자. 설명이 필요 없는 명곡이다.
숫자 9의 저주, 이러한 징크스는 소문은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사망한 뒤에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잇따라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숨지면서 생겨났다. 베토벤 사망 후 이상하게도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쓰기만 하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제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완성한 후 열 번째 교향곡을 스케치하다가 불과 3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때부터 '9번 교향곡의 징크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브루크너도 9번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 돌연 사망했다. 브루크너는 9번이 미완성이므로 저주의 희생양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다. 음악학자들이 브루크너가 젊은 시절 작곡한 1번 교향곡을 발견해낸 것이다. 결국 브루크너 또한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사망한 셈이 되었다. 이외에도 드보르작의 마지막 교향곡 끝 번호는 역시 9번, 작곡가 말러 역시 마지막 교향곡 번호는 9번, 우리에게 덜 알려진 본 윌리엄스도 9번 교향곡을 초연하고 3주뒤 사망하였다.
이쯤 되면 9번이라는 숫자가 의미 있어 보이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베토벤은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바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3년 뒤에 원인 불명으로 사망해서 9번 교향곡 완성 후 바로 죽은 것은 아니다. 슈베르트는 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작곡한 후 3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교향곡에서 특이한 점은 7번과 8번 교향곡이다. 7번 교향곡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슈베르트가 번호를 붙여 놨지만 실제로는 기초 작업만 해놓고 만들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유독 이런 사례가 많은데, 상당히 산만한 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8번 교향곡은 〈미완성 교향곡〉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곡인데, 교향곡이지만 2악장까지만 존재한다. 이 역시 끈기 없는(?) 슈베르트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3악장은 초반 8마디까지만 작곡한 후 이후로는 스케치만 불완전하게 남아있고 4악장은 흔적도 없다. 그 이후에 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작곡하는데 9번은 아주 멀쩡히 남아있으며, 그 이후에 사망하다 보니 9번의 저주라는 말이 떠오르게 된다. 어떻게 보면 7번이 미완성 교향곡이고 8번이 우리가 흔히 아는 <그레이트> 교향곡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종종 클래식 방송에서 그레이트 교향곡을 소개할 때면 8번이다, 9번이다, 하면서 아나운서의 부연 설명을 듣게 된다. 어찌됐건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임헌정
드보르작은 9번 교향곡 작곡 이후 10번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망해서 9라는 저주의 숫자가 그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전에는 9번이 아니라 5번으로 알려져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향곡 1~4번은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그냥 습작으로 묵혀둔 곡이 사후에 발견되어 수정된 곡이어서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교향곡 중 7~9번은 여러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으며3곡 모두 자주 연주된다. 특히 9번의 2악장은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라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곡이다.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꿈속의 고향이라는 노래를 배우신 적이 있을텐데, 그 노래가 이 곡에 가사를 붙인 곡이다.
잉그리쉬 호른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멜로디,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작곡가 말러는 심약하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저주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기록이 있는 유일한 작곡가이며, 어찌 보면 저주의 진짜 창시자라고도 볼 수 있다.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을 작곡한 후 말러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는데, 아내 알마 말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작곡가도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살아남은 적이 없다고 불안하다고 언급했다. 두려움에 떨던 말러는 희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는데 그가 작곡하고 있던 9번째 교향곡에 9번 번호를 붙이는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 쓴 채 번호를 붙이지 않는 꼼수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 사실상의 9번 교향곡인 대지의 노래를 작곡하고도 멀쩡히 살아 남아서, 이제는 문제 없겠지, 하고 다음 교향곡에 당당하게 9번 번호를 매기게 된다. 말러는 2년 뒤 10번 교향곡을 작곡하다 죽고 마는데, 꼼수 부려 봤자 저주를 피할 수는 없는 듯 하다. 덧붙이자면 유작으로 남은 10번 교향곡은 1악장까지만 작곡이 완료되었고 연주가 되더라도 보통 1악장만 연주되므로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사망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말러의 추종자였던 쇤베르크는 말러가 죽은 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곧 죽음과 무척이나 가까워졌다는 뜻이다.”라는 말까지 하다 보니 9번의 저주는 일종의 법칙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말러의 9번 교향곡을 들려드리고 싶지만, 처음 듣는 분들은 좋아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 감상하시길 권한다.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오색찬란한 금관, 현악 및 목관악기가 매끄럽게 어울려서 이 곡을 듣고 있다 보면, 천상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거 같다. 거꾸로 말해, 클래식의 첫 입문자는 지루하고 졸리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말러 이후에 한동안 다시 9번 교향곡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없었는데, 20세기 유명한 작곡가인 시벨리우스도 7번까지만 작곡하였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2번까지, 라흐마니노프는 3번까지 작곡했다. 이 저주는 결국 20세기 중반이 되어서 깨지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25년 19세때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첫 교향곡을 시작으로 한차례의 숙청 위기, 2차대전 등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2차대전이 끝날 무렵 8번 교향곡까지 작곡하게 된다. 마침 2차 대전도 소련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과 양대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선 소련은 소비에트 최고의 작곡가의 (대작곡가들의 최고 명곡들로 가득한) 9번을 엄청 기대하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나온 9번 교향곡은 30분밖에 안되는 매우 작은 교향곡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대단한 곡을 기대했던 구소련 스탈린 정부사람들은 뒤통수를 크게 얻어 맞고 클래식 작곡가 전체를 손 보기 시작한다. 1년뒤 소련 정부에서 쇼스타코비치를 형식주의자라고 대대적으로 비판을 하고 거의 모든 예술가들을 비판하고 제약하기 시작하였다. 9번 교향곡의 저주(?)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운명이었던 쇼스타코비치는 이후 스탈린 사후까지 ‘형식주의’적인 교향곡은 작곡을 못하고 스탈린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허접한 곡들만 작곡을 한다. 1953년 3월 다행히 쇼스타코비치보다 먼저 스탈린이 사망하고 쇼스타코비치는 10번 교향곡을 엄청난 속도로 작곡하여 그 동안의 클래식음악계의 저주를 깨고 10번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최근에는 이런 숫자 9의 저주를 믿는 작곡가는 거의 없으며, 그저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참고로 하이든의 교향곡 숫자는 104개,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KBS 교향악단 (4악장은 38분 33초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하나 들어보자. 교향곡 중에 9번은 재미없고 인기도 없어서 굳이 들을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인기가 가장 많은 교향곡 5번을 들어보자. 그 중에서도 피가 끓어오르고 무한질주하는 4악장을 추천 드린다. 공산당(?) 특유의 질서와 절제력, 군중 심리를 자극하는 멋진 곡이다. 나는살아가면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이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4악장을 꺼내 듣고 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통쾌하고 시원하다.
개인적인 자랑하나 올리면, 위 영상에서 보는 타악기 이영완 수석님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분이다. 얼마전 7월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했던 타악기 앙상블 <카로스타악기 앙상블>의 지휘자로 계셔서 공연 끝나고 기념 촬영을 찰칵 하였다 (저의 딸이랑 같이- )
KBS 교향악단이 추천하는 영화 속의 클래식음악
이번 호의 주제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다 보니 좀 더 다른 영화 속의 음악들이 궁금해 질 거 같아 마지막으로 영상 하나 추천해 본다. 흔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클래식 곡의 다양한 음원을 즐길 수 있지만, 대부분 영상물 중간에 광고가 나오고 유료회원이 아니면 교향곡 전곡을 온전하게 듣기가 쉽지 않다. 이럴 경우에는 공신력 있는 공영 방송의 음원을 찾아 듣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영화 음악 역시 공영 단체인 KBS 교향악단이 추천하는 영화 속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 드린다. 당연히 중간에 끊어짐이나 광고가 없어서 1시간 이상의 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