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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4 | 제18권 2호 <통권68호>

2025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내분비의사의 인문학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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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명 시조(始祖)들에게 축배를

유형준

유형준 CM병원 내과

대한내분비학회 초대 회장을 지내신 민헌기 교수께서 연구 발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생전에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미국의 콘(Conn) 회장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며, 학회에 접수된 초록들을 검토하던 중에 자신이 경험한 고혈압 환자와 유사한 증례를 보고하는 초록을 발견했다. 콘 회장은 서둘러 회장 인사말을 고쳤다. 드디어,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다음과 같이 천명(闡明)했다. “최근에 악성 고혈압 환자의 부신에서 미네랄코티코이드 분비 종양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발병한 악성 고혈압임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이 병적 상황을 ‘콘 증후군’이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콘 증후군을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이라 부른다.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은 부신의 사구체 영역의 선종, 암종 또는 과형성으로 인한 호르몬의 자율적 분비로 인해 발생한다. 레닌-안지오텐신-비의존성 미네랄코티코이드 과잉 증후군의 희귀한 형태다. 골격근 약화 또는 간헐적 마비, 다뇨증, 고혈압 및 심장 부정맥 등의 징후와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고칼륨혈증, 나트륨 유지 및 알칼리증과 관련이 있다.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 첫 보고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 첫 번째 증례 보고는 일반적으로 제롬 콘(Jerome W. Conn)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진료한 서른네 살 여성 환자는 입원하기 7년 전부터 시작한 하지의 약화와 주기적 마비, 그리고 손의 경련을 동반한 빈번한 재발성 무감각을 호소해왔다. 콘은 1955년 10월 29일, 중앙 임상 연구회(the Central Society for Clinical Research) 학술대회 개회식에서 회장 연설을 하면서 자신의 사례를 발표했다. 곧이어 증례보고를 ⟪실험 및 임상 의학 잡지(Journal of Laboratory and Clinical Medicine)⟫에 게재했다. 이에 따라, 콘의 보고는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에 관한 첫 번째 의학문헌 발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콘이 보고하기 2년 전보다 더 전에 폴란드의 내과 의사 미하우 리틴스키(Michał Lityński)가 부신 피질 종양으로 인한 악성 고혈압 환자 두 증례를 발표했었다. 악성 고혈압과 고혈압으로 인한 신부전으로 사망한 두 명의 남성 환자의 부검 결과에서 부신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첫 번째 마흔여덟 살 남성은 양쪽 부신에 지름이 각각 24mm, 30mm의 종양이 있었고, 두 번째 마흔네 살 환자는 오른쪽 부신에 6x5x1.5cm의 큰 종양이 발견되었다.

현미경으로 보니, 종양은 혈관으로 둘러싸인 큰 세포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포는 거품이 있는 세포질과 작은 핵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신의 사구체 영역과 비슷했다. 임상적으로 두 환자 모두 심각한 악성 고혈압 증상이 있었고, 질병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신부전 증상이 나타났다. 혈압은 둘 다 240/150mmHg이었다. 리틴스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두 증례 다 고혈압은 부신피질 종양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한 례는 양측성이었고 다른 례는 오른쪽 부신에 국한되어 있었다. 종양의 구조에서 미네랄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하는 사구체 영역과 유사한 세포의 증식이 발견되었다. 이는 모두 호르몬의 과잉 생산이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부신피질종양으로 인한 동맥 고혈압」 논문은 1952년 7월 29일에 편집부에 접수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폴란드 의학 주간지(Polski Tygodnik Lekarski)⟫에 실렸다.

미국의 콘과 폴란드의 리틴스키

제롬 콘(1907~1994)[그림 1]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 살에 미시간 대학교 의과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서른네 살부터 예순네 살까지 내분비학 및 대사과 부장을 담당하며, 마흔세 살부터 내과 교수를 역임했다.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에 관한 연구 외에도 비만과 고온에 대한 인체 적응 조절을 연구했다.

[그림 1] 제롬 콘(Jerome W. Conn) (1907~1994)

미하우 리틴스키(1906~1989)[그림 2]는 폴란드 우치(Łódź)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교 군사 의학 교육 센터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스물여섯 살에 바르샤바의 군사교육병원, 이른바 우야즈도프스키(Ujazdowski) 병원의 내과 병동 책임자로 근무하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가르볼린(Garwolin)의 군 병원 사령관이 되었고, 나중에 바르샤바의 우야즈도프스키 병원에 병동 책임자로 돌아왔다. 그 후 바르샤바 볼라(Wola) 병원의 결핵 연구소의 병동 책임자로 일했다. 아밀로이드증, 당뇨병, 단백질 대사 등에 관한 연구들을 포함하여 열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림 2] 미하우 리틴스키(Michał Lityński) (1906~1989)
콘 증후군인가? 리틴스키-콘 증후군인가?

리틴스키의 발견은 콘의 발견보다 2년 앞선다. 이 발견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와 냉전 동안 서구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을 저널에 발표되었고, 근 삼십여 년 동안 잊혔었다. 1983년과 1984년에 발렌티나 하르트윅(Walentyna Hartwig)과 프란치세크 코코트(Franciszek Kokot) 두 사람이 각각 그의 공헌을 발견했고, 몇 년 후 폴란드의 타데우시 마르친코프스키(Tadeusz Marcinkowski) 교수는 이 증후군의 이름을 ‘리틴스키-콘 증후군’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1991년, ⟪랜싯(Lancet)⟫은 미하우 리틴스키가 원발성 고알도스테론증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은 폴란드 실레시아(Silesia) 의과대학 내과 유진 쿠하르츠(Eugene Kucharz) 교수의 편지를 게재했다. 편지 제목은 ‘일차성 고알도스테론증에 관한 잊힌 설명’이었다.

“편집자 선생님, 동일한 임상적 관찰을, 종종 두 사람 이상의 연구자가 각자 독립적으로 수행합니다. 게다가, 일부 논문은 언어나 게재된 저널 때문에 잊힙니다. 한 가지 예는 1953년 폴란드 의사가 발표한 일차성 고알도스테론증에 관한 논문입니다. 콘의 유명한 논문보다 2년 앞서 발표되었습니다.

……(중략)……

지금까지 리틴스키 박사는 인정받은 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관찰 결과를 발표했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합니다. 당시엔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일이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기에 고혈압과 미네랄코티코이드를 생성하는 부신 종양의 연관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미하우 리틴스키라는 사실이, 올바로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 「일차성 고알도스테론증에 관한 잊힌 설명」 (Lancet 1991;337:1490) 부분

뒤이어, 고혈압 분야의 세계적 거장 놀먼 카플란(Norman Kaplan, 1931~2020)은 저서 『임상 고혈압』에서 리틴스키의 선례와 여러 학자들의 제안을 인정하는 내용을 실었다.

맺는 글 - 질병명의 시조(始祖)들을 위해 축배를

“질병, 증후군 및 임상 징후의 이름은 다양한 방식으로 붙여진다. ‘급성 신부전’과 같이 병리학적 과정을 강조하거나, ‘포도당-6-포스페이트 탈수소 효소 결핍’처럼 근본적 장애를 표시하거나, 처음 발견하거나 설명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거나, 모양의 유사성에 따라 ‘버펄로 혹’ ‘고양이 눈 증후군’ 등으로 칭한다. 또한 로마의 시저가 태어난 역사적 사건을 빌어, 복부를 절개하여 아기를 받는 수술을 영어로 ‘시저 섹션(Caesarean section, 우리말로 ‘제왕절개’)’이라 한다. 이 밖에도 질병이나 증후군 명칭 중엔 처음 보고하거나 혁혁한 연구 업적을 낸 사람의 이름이 붙은 게 적지 않다.

아일랜드의 은퇴한 소아과학 교수 질(Denis Gill)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현상을 ‘이름의 시조화(始祖化)’라 부른다. 질 교수는 시조화를 칭찬과 쓴소리를 섞어 축하하고 있다. “많은 의사는 이름의 시조(始祖)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역사적 인정을 받았다. 익명성을 걷어낸, 이름의 시조화는 창조적 실천자의 강한 자만과 허영으로 남아있다. 자, 이름의 시조들을 위해 잔을 들어, 의학에 색깔, 호기심, 초조, 그리고 개성을 보탠 그들의 이름에 축배를 올리고자 한다.”

- 유담, 『의학에서 문학의 샘을 찾다』에서

* 필자 약력
유형준
유형준

시인 (필명 柳潭(유담)) 및 수필가 /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 함춘문예회 회장 / 쉼표문학회 고문 /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 / 의학과 문학의 접경 연구소 소장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및 의료인문학 교수 /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 대한비만학회회 회장 / 대한노인병학회 회장 /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 문학청춘작가회 회장 / 의료와 예술 연구회 회장

  • 단독 저서 -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 시집 -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 산문집 - 『늙음 오디세이아』, 『의학에서 문학의 샘을 찾다』, 『글 짓는 의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