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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6 | 제18권 4호 <통권70호>
2025년 겨울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Webzine No.46 | 제18권 4호 <통권70호>
2025년 겨울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박이병 가천대학교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연말이 되면 클래식 음악은 유독 따뜻하게 들립니다. 지난 1년 동안 진료와 연구, 교육에 힘쓰며 고생한 자신의 몸에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건네는 시기이기도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마음이 느려지는 탓이기도 합니다. 반짝이는 조명과 차가운 겨울 공기 사이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음악을 찾게 되고, 익숙하거나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멜로디들이 깊은 위로처럼 스며듭니다. 그중에서도 연말이면 자주 듣게 되는 작품 네 곡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두 연말 공연에서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이면서, 특히 이 계절에 들으면 더 기분 좋은 작품들입니다.
호두까기 인형 (201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발레단
12월의 클래식 음악 중 이 작품을 빼놓긴 어렵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크리스마스 풍경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이 발레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짝이는 트리, 아이들의 설렘, 눈송이가 흩날리는 밤의 무대—이 모두가 〈호두까기 인형〉 속 장면들이 문화적으로 굳어진 결과이다.
특히 ‘꽃의 왈츠(Waltz of the Flowers)’와 ‘설탕 요정의 춤(Dance of the Sugar Plum Fairy)’은 겨울 광고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꼭 들리는 음악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차이코프스키는 초연 며칠 전 “이 발레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된다”고 편지에 적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 정기 공연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말 대표 작품이 되었다.
연말 공연 일정을 보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이 작품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린다. 두 단체 모두 같은 작품을 공연하지만, 해석과 연출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① 주인공의 이름부터 다르다: 마리 vs 클라라국립발레단은 전통적으로 주인공 소녀의 이름을 마리(Marie)라고 부른다. 이는 원작 동화에 가까운 설정이다. 반대로 유니버설발레단은 클라라(Clara)를 사용한다. 이는 미국·유럽의 여러 현대적 연출에서 채택된 이름으로, 좀 더 발랄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버전이다. 이름의 차이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마리는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클라라는 현대적이고 가족극적인 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감정선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② 국립발레단 – 품격과 균형, 정통 고전 발레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러시아 전통 스타일에 기반한 고전적 구성이 뚜렷하다.
무대는 절제된 화려함을 지향하고, 안무 라인은 선이 길고 균형감이 강하며, 군무는 러시아식 정교함이 살아 있다. 특히 ‘눈의 왕국’과 ‘꽃의 왈츠’ 장면에서는 대형 군무가 만들어내는 장중함과 고전적 아름다움이 중심을 이룬다. 국립발레단의 강점인 정확하고 정제된 테크닉이 잘 드러나며, ‘정통 발레’의 품격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큰 만족을 준다.
반면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서사성과 가족 친화성이 돋보인다. 장면 전환이 더 풍성하고 드라마적이며, 캐릭터의 동작과 표현에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출이 두드러진다. 아동 관객을 고려한 포근한 무대 색감과 상징적 이미지가 많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특유의 부드러운 선과 서정적 무드는 작품 전체를 좀 더 따뜻하고 동화적인 연말 가족극으로 만든다. 특히 1막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 드러나는 캐릭터 연기가 풍성해,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크다.
| 요소 | 국립발레단 | 유니버설발레단 |
|---|---|---|
| 주인공 이름 | 마리 (Marie) | 클라라 (Clara) |
| 전반적 연출 | 클래식·정통·절제 | 서정·가족극·서사 강조 |
| 안무 스타일 | 정교·균형·러시아식 고전 | 부드러움·이야기성·표현력 |
| 분위기 | 품격·장중함 | 따뜻함·동화적 색채 |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립발레단은 정통 발레의 품격과 구조적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 유니버설발레단은 크리스마스의 따뜻함과 이야기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관객에게 어울린다.
나의 후작님 (웃음 아리아) (Mein Herr Marquis (Laughing Song/Adele) – Regula Mühlemann – Vienna State Opera – Fledermaus/Strauss)
비엔나에서는 12월 31일 저녁 <박쥐(Die Fledermaus)> 공연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진다. 왈츠와 폴카, 화려한 파티 분위기, 샴페인의 들뜬 감정이 작품 전체를 채우기 때문이다. 음악은 귀에 쏙 들어오고, 이야기는 변장과 오해, 장난으로 가득한 코미디 작품이다.
스토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유한 신사 아이젠슈타인은 사소한 일로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전날 밤 친구 팔케 박사에게 속아 왕자 오를로프스키의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문제는 파티에서 모두가 가면을 쓰고 신분을 숨기며, 남편과 아내조차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내 로잘린데는 ‘헝가리 귀부인’으로 가장하고 남편을 몰래 따라오며, 하녀 아델레도 변장해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아이젠슈타인은 가명으로 파티에 참여해 아내를 유혹하려 하고, 로잘린데 역시 그를 속이려 하고~~. 다음 날 감옥에서 모든 거짓말과 오해가 드러나고, 결국 이 모든 일은 팔케 박사의 장난(‘박쥐 복수’)이었음이 밝혀진다. 사람들은 웃음 속에서 화해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대표 아리아인 〈Mein Herr Marquis(나의 후작님, ‘웃음의 아리아’)〉는 경쾌함과 익살을 아주 잘 살린 곡으로 꼭 들어봐야 할 작품이다.
Die Fledermaus(1972) By Karl Bohm/Korean Subtitle
이외에도 유튜브에 오페라 <박쥐> 전곡을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이 있는데, 유명 지휘자 칼뵘이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감상해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린다.
La Bohème, Atto I - Kaufmann, Willis-Sørensen - Munich, 2020
세 번째 추천 작품은 푸치니의 <라보엠(2024년)>. 첫 장면부터 파리의 다락방, 차가운 방 안에서 난로에 넣을 종이를 찾는 청춘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배고프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고 사랑하고 노래를 만들며,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가난한 예술가 로돌포(시인)와 미미(재봉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미미의 폐질환은 점점 악화되고, 가난 속에서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게 된다. 다시 만났을 때 미미는 로돌포의 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로돌포는 절규 속에 그녀를 떠나 보낸다는 스토리.
이 작품에서 꼭 들어야 할 두 아리아를 소개하면~
첫번째 곡은 <Che gelida manina(이 얼마나 차가운 손인가)>이다. 1막에서 주인공 로돌포가 부르는 테너 아리아. 청춘의 설렘과 첫사랑의 떨림이 음악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라 보엠의 분위기를 단번에 느끼기 좋다.
La bohème - Si mi chiamano Mimì (Puccini; Nicole Car, The Royal Opera)
두번째 곡은 <Sì, mi chiamano Mimì (네, 사람들은 저를 미미라고 불러요.)>. 미미가 자신을 소개하는 소프라노 아리아. 맑고 섬세한 목소리로 미미의 순수함과 인간적인 매력을 잘 드러내는 곡이다.
Royal Choral Society: 'Hallelujah Chorus' from Handel's Messiah
크리스마스 음악 중 가장 장엄한 작품을 꼽으라면 헨델의 <메시아>가 첫손에 들 수 있다. 그중 ‘할렐루야’ 코러스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놀라운 사실은, 이 거대한 작품이 단 24일 만에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1741년 가을 극심한 재정난에 빠졌던 헨델은 아일랜드 자선 공연 제안을 받고 <메시아> 작곡에 몰두했다. 그는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작업했고, 마지막 악장을 완성한 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듯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연 역시 자선 공연이었고 수익금은 채무자 구제와 병원 설립에 쓰였는데, 작품의 메시지가 실제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연말에 더욱 의미 깊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말 공연은 화려하거나 경쾌하거나, 때로는 깊이 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는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감정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한 해의 기쁨과 실망, 만남과 이별을 잠시 끌어안고 마무리하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일 것이다.
어떤 음악을 선택하든, 그 멜로디가 올해의 마지막 밤을 부드럽게 감싸주길 바랍니다.
지난 1년동안 저의 <힐링 아트 라이프>에 관심 가져 주신 대한내분비학회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더욱 더 성과 있는 한해가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