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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9 | 제19권 3호 <통권73호>

2026년 가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내분비의사의 인문학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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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거인증과 왜소증, 타자의 시선을 공감으로 바꾼 내분비학

유형준

유형준 전 한림의대 교수, 시인

우리는 자주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정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긋고, 이 기준에 들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을 타자(他者)로 밀어낸다.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비정상과 열등이라는 낙인을 찍고, 심지어 폭력을 동원하여 통제하고 배제한다. 경계선 너머의 존재들은 철저히 배제되거나 구경거리로 소비되었다. 그리고 그 배타와 소외의 한가운데, 신체의 규격이 평균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 전체를 부정당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거인증과 왜소증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평균적인 신체의 범위를 초월하여 거대하거나, 반대로 턱없이 왜소한 이들의 신체는 당대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공포, 혹은 기이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과학과 의학이 아직 어둠 속에 희미할 때, 인류는 이들의 외형적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결과, 이들의 신체는 단순한 생물학적 변이가 아닌 종교적, 주술적, 혹은 문화적 내러티브의 희생 제물로 쓰였다.

고대와 중세, 거인증이 있는 이들은, 신화 속에서 신의 질서에 대적하던 티탄이나 키클롭스처럼, 거대한 신체는 그 자체로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 괴상한 타자로 인식되었다. 반면, 왜소증이 있는 이들은, 고대 이집트의 왕궁에서부터 중세 유럽의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에 이르기까지, 지배층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유희의 장식품이자 광대로 소비되었다.

이 잔인한 시선의 역사는 이성을 자랑하던 근대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았다. 서커스 천막 안에서 거인증과 왜소증 환자들은 무대 위 구경거리로 세워져 대중의 관음증을 채워주는 돈벌이 도구였다.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인들의 우월감을 확인시켜 주는 구경거리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림 1. 엄지 장군, 제너럴 톰 섬(General Tom Thumb)으로 불린 찰스 셔우드 스트래턴(Charles Sherwood Stratton, 1838~1883)[그림 오른쪽]은 왜소증 환자로, 미국 서커스의 선구자 바넘(Phineas Taylor Barnum)[그림 왼쪽] 밑에서 공연자로 활동했다. 키 89 센티미터, 나중에 뇌하수체 성장호르몬 결핍 왜소증으로 추정. 사진: Samuel Root, Public Domain.

타자로 박제되었던 그들의 세계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찾아온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내분비학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었다. 내분비학은 이들의 신체적 변이가 신의 저주나 악마의 징조가 아닌, 그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임을 밝혀냈다. 성장이 멈춘 후에도 성장호르몬이 계속 분비되어 손, 발, 턱 등 신체의 말단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유전적 요인, 혹은 성장호르몬의 결핍으로 신장 발육이 저하된다는 점이 알려졌다.

원인이 호르몬이라는 미세한 물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을 향했던 도덕적·종교적 비난은 근거를 잃었다. 비이성적 낙인은 지워지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호르몬 계통의 오작동이라는 객관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

내분비학은 그들의 육체를 짓누르고 있던 주술의 무거운 장막을 걷어내고, 이 괴이함을 철저한 생물학적 인과관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질병의 원인이 규명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의학적 승리를 넘어, ‘알지 못함’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의 시대를 끝내고, ‘앎’에서 비롯되는 이해와 공감의 서막을 열었다. 그들의 고통에 진단명을 붙이고, 그들이 왜 남들과 다른 신체를 가지게 된 서사를 제공하였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매일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해야 했던 거인증과 왜소증 환자들의 실존적 고뇌를 치유했다. 마침내 외형의 규격을 넘어 서로의 존엄성을 온전히 마주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에서 정상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자연적 기준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권력과 지식이 사람들을 분류하고 통제하기 위해 생산한 역사적 규범이다.”

그림 2. 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1984). 사진:Jerry Bauer, Public Domain.

푸코는 정상성은 사회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인 평균값일 뿐,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인 진리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님을 강조한다. 푸코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본다. “누가 정상을 정의하는가?” “어떤 제도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가?”

* 필자 약력
유형준
유형준

시인(필명 유담), 수필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및 의료인문학 교수, 대한당뇨병학회장, 대한비만학회장, 대한노인병학회장,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장.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문학청춘작가회장, 한국의사수필가협회장, 함춘문예회장, 의료와 예술 연구회장. 현재. 씨엠병원 내분비내과장. 쉼표문학회 고문, 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 단독 저서 -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성인병 알아야 이긴다』 등
  • 시집 -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등
  • 산문집 - 『늙음 오디세이아』, 『의학에서 문학의 샘을 찾다』, 『글 짓는 의사들』, 『우리나라 최초 의사문인 포백 김대봉 문학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