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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8 | 제19권 2호 <통권72호>
2026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Webzine No.48 | 제19권 2호 <통권72호>
2026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박이병 가천대학교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Yunchan Lim 임윤찬 –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2022년 6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콘서트홀. 만 18세의 청년이 무대에 올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객석은 이내 숨을 죽였다. 현장 공연이 유튜브로 생중계되면서 한국에서도 수십만 명이 밤을 지새우며 화면을 지켜봤다. 연주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최고점을 부여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순간이었다. 감격스러운 그 순간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 클래식계에서는 또 다른 수상 소식들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단순한 '입상 릴레이'를 넘어, 이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SEONG-JIN CHO – Piano Concerto in E minor, Op. 11 (final stage of the Chopin Competition 2015)
클래식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 피아니스트 10년 주기설'이 오래전부터 회자돼 왔다. 1984년생 임동혁이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형 임동민과 함께 공동 3위에 오른 이후, 1994년생 조성진이 정확히 10년 뒤인 2015년 같은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4년생 임윤찬이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라는 기록과 함께 그 계보를 이어받았다.
조성진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폴란드의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대회다. 쇼팽의 모국어로 치러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무대에서 한국 청년이 우승했을 때, 전 세계 음악계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심사위원단은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선 깊은 음악적 통찰'을 이유로 들었다.
임윤찬의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다. 7세에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시작한 평범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하루 16시간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 집중력으로 무장했다. 우승 직후 그는 인터뷰에서 조용히 말했다. '음악은 아픔의 순간에서 소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연주 내내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처절한 서정이, 그 한마디로 설명됐다.
Taehan Kim | Queen Elisabeth Competition 2023 – Final
K-클래식의 약진은 피아노 부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만 봐도 한국 연주자들의 족적이 뚜렷하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임지영(2015년)이, 성악에서는 홍혜란(2011년), 황수미(2014년), 바리톤 김태한(2023년)이 각각 정상을 밟았다. 2022년에는 첼리스트 최하영이 우승하며 한국이 첼로 부문에서도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은 특히 화제가 됐다. 결선에 진출한 12명 중 한국인 남성이 3명이나 포함되었고, 바리톤 김태한이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성악 부문이 신설된 이후 아시아 출신 남성 성악가가 우승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그 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한국 클래식 세대 간 연결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회자됐다.
지휘의 세계에서도 한국의 이름이 들려온다. 30대 초반의 지휘자 김산은 2025년 라흐마니노프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세계 지휘계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로부터 직접 상을 받았다. 러시아 음악의 정수가 살아 숨 쉬는 현지에서 젊은 한국 지휘자가 공인받았다는 사실은, K-클래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202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에는 289명의 전 세계 지원자 중 한국인이 무려 13명 진출했다. 국가별로 가장 많은 수였다. 이 숫자는 단순히 인구 대비 비율이나 교육 시스템의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그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개인의 이야기가 있다.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2021년 박재홍과 김도현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1949년 시작된 이 콩쿠르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알프레드 브렌델 같은 거장을 배출한 무대다. 우승자가 극히 드물기로 유명한 이 대회에서 한국인이 1, 2위를 모두 차지했을 때, 현지 언론은 '경이로운 한국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재홍은 이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도 함께 세웠다.
수상의 이면에는 늘 묵묵한 이야기가 있다. 오랜 시간 연습실을 지킨 시간, 부모의 지원,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 그리고 실패 뒤에도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용기. 선율은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2024년)에서 우승할 때까지 이미 수년간 여러 대회에서 담금질을 거쳐왔고, 신창용은 같은 대회에서 6년 먼저 우승한 선배의 길을 묵묵히 따라 걸었다. K-클래식의 행진은 화려한 수상 순간만이 아니라, 그 앞에 쌓인 수천 시간의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KBS음악실] 첼리스트 김정아 초대석 (260415)
2026년 4월 6일, 런던 왕립음악원(Royal College of Music). 40명의 전 세계 첼리스트들이 기량을 겨룬 '클래식 첼로 국제 콩쿠르' 결선이 막을 내렸다. 우승자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만 15세의 한국 소녀 김정아였다. 그것도 이 대회 본선 진출자 전원 중 가장 어린 최연소였다.
김정아는 결선에서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와 알렉세이 쇼어의 첼로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심사위원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기량과 뛰어난 음악성'을 이유로 우승을 결정했다. 상금 5만 유로(약 8,680만 원)와 함께, 18세기 이탈리안 첼로를 2년간 무상 대여받는 '플로리안 레온하르트 펠로우십 특별상'도 동시에 수상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같은 대회에서 18세 박이준도 2위에 오르며, 1·2위를 한국이 나란히 석권했다.
김정아의 이름이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23년이었다. 당시 만 11세로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역대 최연소 1위와 특별상 4개를 한꺼번에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권혁주 콩쿠르 대상, 다비드 포퍼 국제 첼로 콩쿠르 영 첼리스트 부문 1위까지, 그녀는 이미 국제 무대를 여러 차례 밟으며 담금질을 거쳐왔다. 금호영재 출신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녀의 성장은, K-클래식의 저변이 얼마나 두텁게 쌓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결선 무대 영상 전체를 얻을 수 없어 김정아 첼리스트의 다른 영상물 중에서 모 방송국의 초대석 영상물을 한번 즐겨보자.
K-팝, K-드라마, K-푸드가 세계로 뻗어나간 것처럼, K-클래식도 지금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세계 음악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다만 그 성격은 다르다. K-팝이 콘텐츠의 힘으로 시장을 만들었다면, K-클래식은 개별 예술가의 깊이와 성실함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심사위원들을 설득해 낸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준결선 연주를 '2022년 올해의 클래식 공연'으로 선정했다. 콩쿠르 무대가 이 상에 선정된 것은 뉴욕타임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의 눈이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무대 위 조명 아래, 그들은 홀로 앉아 혹은 서서 악기와 대화한다. 수백 년 전 유럽에서 태어난 음악이, 한반도에서 자란 청년들의 손과 목을 통해 21세기 관객들에게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2026년, 이제 열다섯 살 소녀가 런던 무대에서 활로 첼로 줄을 켜며 그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K-클래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흥미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래에는 최근에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를 정리해 보았다. 이들의 연주회가 있을 때는 주저 없이 관람해 보시길 권유드린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