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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7 | 제19권 1호 <통권71호>

2026년 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문화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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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아트 라이프 (5)
전쟁 속에서도 울려 퍼지는 음악

박이병

박이병 가천대학교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최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중동 정세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엉망입니다. 유가는 오르고 항공료도 오르고 종량제봉투는 품절 사태(?)라는 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랜 갈등의 축을 형성해 온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이 얽힌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전 세계 경제와 외교 질서를 흔드는 위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클래식음악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쟁과 클래식?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는 극적인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요~.

죽음의 도시 레닌그라드

Schostakowitsch: 7. Sinfonie (Leningrader), Klaus Mäkel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 세계대전. 1941년, 나치 독일은 소련의 주요 도시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포위했다. 나치의 전략은 단순하고 잔인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보급로를 끊어 시민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봉쇄는 무려 872일동안 진행되었으며 추위와 기아는 도시를 유령 마을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가죽 구두를 삶아 먹고 벽지를 뜯어 연명했으며, 매일 수천 명이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절망 속에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는 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며 시민들의 고통과 저항을 담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1942년 여름, 소련은 이 교향곡을 포위된 도시 안에서 연주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연주 가능한 오케스트라 단원은 단 15명뿐이었다. 지휘자 칼 엘리아스베르크는 전선의 병사들을 불러 모았고, 총 대신 악기를 든 이들이 모여들었다. 영양실조로 악기를 들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단원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이 음악이야말로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1942년 8월 9일, 연주 당일 소련군은 독일군의 방해를 막기 위해 선제 포격을 감행했다. 포탄이 멎은 순간,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 선율은 라디오와 스피커를 통해 도시 전역과 전선으로 퍼져 나갔다. 시민들에게는 희망을, 병사들에게는 승리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놀랍게도 이 음악은 독일군 진지에도 들려왔다. 굶주려 무너졌을 것이라 여겼던 도시에서 울려 퍼진 장엄한 교향곡은 적군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훗날 한 독일군 병사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이 도시를 결코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이 곡이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7번째 교향곡 <레닌그라드>이다. 7번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라우스 메켈레의 지휘로 감상해 보자. (지휘자가 엄청 미남이고 지적인 모습이어서 부러울 지경이다)

영화 <피아니스트>

영화 피아니스의 한 장면. 쇼팽 발라드 1번 (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이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이 작품은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ładysław Szpilma)(1911~2000)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에는 슈필만이 독일군 장교와 마주쳤을 때의 상황이 자세하게 나온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먹을 것을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슈필만. 빈 방을 이곳저곳 뒤지던 끝에 드디어 뜯지 않은 통조림 깡통을 찾아낸다. 하지만 쇠막대기로 어렵사리 찾아낸 통조림 깡통을 따려고 하다가 실수로 그것을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바닥에 구르며 아까운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는 통조림 깡통을 따라가는 카메라. 그런데 이렇게 깡통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던 카메라에 갑자기 독일군 군화가 잡힌다. 수려한 용모의 독일군 장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난 순간 숨 멎을 듯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해 온다. 그 순간의 슈필만은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어렵사리 찾아낸 통조림 깡통을 생명의 양식인양 부둥켜안고, 어쩌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릴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서 있었다. 장교가 그의 직업을 묻는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장교가 그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한 곡 쳐보라고 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스필만의 뇌리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슈필만은 자서전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건반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손가락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쨌든 지금 피아노를 쳐서 몸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나는 거의 2년 반 동안이나 연주를 하지 못 했다. 손가락은 뻣뻣했고, 씻지 못해 손이 지저분하게 먼지 투성이었다. 추운 날씨 탓에 동상 일보 직전의 상태였으며, 손톱도 깎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유리창도 없는 방 안에 방치된 피아노는 기계 장치가 습기로 팽창되어 건반이 아주 뻑뻑했을 것이다. 나는 쇼팽의 ‘야상곡 C# 단조’를 쳤다. 제대로 조율도 안 된 피아노 줄의 탁한 울림이 텅 빈 집과 계단을 지나 길 건너편에 있는 빌라의 폐허에 부딪쳐 맥빠지고 우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연주를 끝내자 그 침묵은 전보다 한층 더 음울하고 괴기스러웠다. 거리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밖에서 총성과 함께 사납게 짖어대는 독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그는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이렇게 극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이 야상곡 C# 단조를 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극적인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 감독 폴란스키는 서정적인 야상곡 C# 단조 대신 격정적인 ‘발라드 1번’을 선택했다.

포로수용소에서 초연된 음악

Antje Weithaas, Violine / Sol Gabetta, Cello / Sabine Meyer, Clarinet / Bertrand, Chamayou, Piano

가장 극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작곡가 Olivier Messiaen의 작품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놀랍게도 새로운 작품을 작곡한다. 바로 Quatuor pour la fin du temps(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실내악 편성이 아니라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라는 독특한 편성으로 쓰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용소에 그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는 포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눈 덮인 겨울 밤에 포로수용소에서 초연된 이 연주에는 수백 명의 포로와 독일 군인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고 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음악이 연주되었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 정신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최근에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데, 4중주 구성이 특이하고 다른 작품들과 달리 8악장이나 되는 곡이다보니 한 두 번 들어보면 잊을 수가 없는 곡이라 할 수 있다.

1941년 1월 15일 영하 20도 혹한의 포로수용소에서 초연 되었던 8악장을 들어보자. 현대음악이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업로드 해드린 영상물의 연주자들이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라,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어 들어보시길 권유 드린다.

연주진이 무척 화려하다. 연주자들의 이름을 기억해 두면, 공연장을 찾아가거나 앨범을 구매할 때도 도움이 될 거 같다. 왜나면 이들이 연주하는 공연은 티켓 가격도 비싸고 감상 만족도도 높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폐허 속의 첼로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는 전쟁 속에서 실제로 연주된 음악이다. 1990년대 발칸 전쟁 당시 보스니아의 수도 Sarajevo는 오랜 기간 포위 상태에 놓여 있었다. 포격과 저격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한 음악가가 거리로 나왔다. 첼리스트 Vedran Smailović였다. 그는 폭격으로 사망한 시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폐허가 된 거리에서 매일 첼로를 연주했다. 그가 자주 연주한 곡은 Adagio in G minor였다. 포탄이 떨어지는 도시에서 울려 퍼진 첼로의 선율은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폐허 속에서 연주하는 첼리스트 Vedran Smailović

이 때 연주된 곡을 다른 연주자, 크로아티아 출신의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의 연주로 들어보자.

전쟁은 인간 문명의 가장 파괴적인 얼굴이다. 도시가 무너지고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며, 인간이 오랜 세월 쌓아온 문화와 예술 역시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예술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총성과 폭격 속에서도 음악이 연주되고,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은 예술을 지키려 한다. 전쟁은 예술을 파괴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왜 예술을 필요로 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