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최초이기도 하고 미국 학회에서 외국인으로서 이사로 활동하시기까지 남다른 여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의 노력이랄지 비결 같은 것이 있었을지요?
그리고, 이미 국제 학회에서 Ambassador, Member of American Society for Bone & Mineral Research, Clinical Guideline Committee Member of American Endocrine Society로 활동하고 계셨는데요. 이전의 활동이 이번 ASBMR 이사 선출에 어떤 초석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 1. Paula Stern Award수상 장면, 2024 토론토에서 열린 ASBMR학회 현 회장인 Laura Calvi와 함께
축하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회 임원 활동은 그간 대한내분비학회에서 이미 여러 가지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좋은 훈련과 경험이 되었던 것이 밑받침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언감생심 미국 학회에 참석하는 것 외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거나 수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개인적으로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자체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뀌고 K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큰 배경이 글로벌 학회 활동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나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질문하셔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미국골대사학회(American Society for Bone and Mineral Research, ASBMR)에는 전임의 1년 차 때부터 임승길 교수님께서 지도를 해주신 주제 발표를 시작으로, 911으로 큰 사건이 일어난 해 외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Annual Meeting에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매번 제가 하고 있던 연구를 발표하면서 처음엔 포스터로 시작해서 Young Investigator’s Award [사진2]도 받게 되면서 구연발표도 하게 되었고 Meet-The-Professor세션과 Clinical Debate에 패널, 구연 세션의 좌장 등 계속 제가 세계 여러 나라의 회원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병행해서 제 주 연구분야인 골무기질대사 관련 내용들을 ASBMR 공식 저널인『JBMR(Journal of Bone and Mineral Research)』에 싣고자 계속 시도하고 많이도 떨어졌지만, 하다 보니 꽤 많은 수의 논문들을 결과적으로는 실리게 되었습니다. 즉 말이 길어졌는데, 우선 중요한 것은 “실력을 쌓으면서 나를 계속 알리는 일, self promotion”이 중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2008년부터 2년간 미국 인디애나에 있는 Indiana University-Purdue University Indianapolis (IUPUI)에 연수를 갔을 때 제 PI가 Teresita Bellido교수였습니다[사진 3]. 이 분도 아르헨티나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와서 박사부터 해서 포닥(Postdoc), 교수까지 이어진 남다른 여정을 보낸 여교수셨습니다.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이미 ASBMR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셨고 제가 귀국 이후 ASBMR 회장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이때 저를 그 와중에 가장 처음으로는 Women in Bone and Mineral Research Committee에 Ad-hoc member로 1년간 경험을 할 제안을 주셨는데, 한국에서도 이미 너무 바빠서 이런 일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여성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호기심도 났고 도대체 미국 학회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 이후에 ASBMR에서 외연 확장을 위해서 각 나라의 Ambassador를 선정할 때 선출이 되어 수년간 활동을 해왔었습니다[사진 4]. 그리고, 각종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ASBMR 회장 선출 위원회나 『JBMR』의 Editor-in-Chief 선발 위원회 등 조금은 귀찮고 내게 큰 득이 되지는 않지만, 요청이 오면 열심히 수락하고 활동을 했었습니다. 각종 위원회에서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처음 부여해 준 것이 큰 계기였고 이런 활동을 시작으로 많은 미국과 세계의 우리 분야 연구자들과 의사들을 만나게 되어 그다음 활동으로 누군가 추천을 해주게 되어 여러 활동들을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 관계, Human Network”가 중요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사실 이사로 선출되기까지 한 번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2번째 시도해서 선출이 되었습니다. 미국 학회들은 어떤 직책이든지 그냥 누가 시키는 것은 아니고 우선 각종 위원회에는 Volunteer로, 이사직의 경우는 선거 Candidate로 각종 서류를 정리해서 제출을 하면 위원으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선거 후보로 나설 수 있는지를 리뷰 선정하는 위원회가 따로 있어서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 위원회 활동에도 첫 지원을 했을 때 선정이 안된 적도 있었고, 이번 이사 선출직에도 2년 전 출마는 다행히 했는데, 주변에 많이 알리지를 않았다가 똑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무안하고 민망해서 다시 지원할 생각을 못 했는데, 의외로 미국 동료들이 다시 해 보라고 격려를 해주고 추천서를 써주어 2년 만에 재수를 했고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한국, 미국과 여러 국가에 아는 분들께 출마 사실을 알리고 열심히 해보겠음을 어필을 했고 선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임한 점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2. 2009년 당시 ASBMR회장이셨던 Lynda Bonewald교수님께 수상하는 사진
사진 3.미국 IUPUI의 Teresita Bellidor 교수님과 함께
사진 4. ASBMR Ambass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