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약간 다르게 연수를 임용 전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단 몇 년이라도 일찍 가서 공부하고 오라고 하셨고, 어떤 분들은 몇 년 후면 학교의 지원을 받고 가게 될텐데 뭐하러 서두르냐는 조언도 해 주셨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and Harvard Medical School의 당뇨병, 내분비대사 연구실로 지은 지 몇년 안 된, 미국에서는 매우 최신식에 속하는, Center for Life Science라는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PI가 다양한 내분비 질환을 주제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특히 neuroendocrinology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김영범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2년 동안 지내게 되었는데 주로 인슐린 저항성의 분자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오셨고 최근에는 Rho kinase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는 곳입니다. 제가 주로 진행했던 연구 주제도 지방 세포와 간에서 Rho kinase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동물 모델에서 규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초 실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연수를 떠난지라 걱정이 많았는데, 편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교수님과 자주 대화하고 의논하면서 방향을 잡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장점이었습니다. 미숙한 상태였지만 공부를 해서 어떠한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항상 반대 없이 격려해 주셔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초 연구라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인지, 임상 의사로서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제 막연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보스턴은 물가와 추위를 빼면 연수지로 매우 이상적인 곳이라고들 말합니다. 학문의 중심지이다 보니 대가들의 강의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점심도 공짜로 해결할 겸 Joslin Diabetes Center의 컨퍼런스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고, 매주 열리는 병원의 Endocrine Grand Round 도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은 NEBS라는 한국인 과학자 모임의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정말 많은 한국분들이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놀랍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처음 아무것도 없는 텅빈 집에 들어갔을 때는 막막함에 잠시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미국 생활이 익숙해지니 돌아올 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 생활에 적응을 하였지만 가끔은 그리운 마음에 연수 생활을 떠올리며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보스턴에서 잘 지내고 무사히 연수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김영범 교수님은 연구실 생활 뿐만 아니라 미국 정착부터 돌아올 때까지 큰 도움을 주셨고, 저희 대학의 대선배님이신 김덕수 교수님께서는 부모님처럼 저희 가족을 챙겨주셨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한국인 연수자 가족들과의 교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고 보스턴 한인 성당의 반석회 회원 여러분들도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자주 점심을 챙겨주셨던 성빈센트병원 종양내과의 심병용 교수님과 인근의 여러 연구자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연수를 적극적으로 권유해 주셨던 윤건호 교수님과 저의 연수로 인해 한동안 힘드셨을 안유배 교수님, 고승현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짧은 연수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