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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수기 (기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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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지&간행물
University of Alberta, Edmonton, Canada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4-05 조회수 298
Link URL https://www.endocrinology.or.kr/webzine/202304/sub7.html

2022년 4월부터 1년 동안 캐나다 Edmonton에 위치한 University of Alberta에 해외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연수를 조금씩 마무리하기 시작한 2월 중순에 본 원고를 의뢰 받고 한 문장 한 문장 후기를 작성하면서 지난 1년을 조금씩 돌아볼 기회를 가져봅니다. 그동안 병원과 학교 그리고 학회에서의 여러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던 저에게 이번 연수는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해외 연수를 무작정 미룰 수만은 없어 2021년 경부터 개인적으로 조심스레 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연수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이 저에게 가장 좋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여러 선배 교수님들처럼 해외의 유명 big guy의 lab에서 식견을 넓히고 다양한 최신 기초/임상 연구를 경험하며 인맥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실험실에 앉아 pipet을 직접 잡으면서 실험하고 공부했던 기억을 돌이켜보니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바쁘다는 핑계로 wet lab를 멀리하는 동안 기초 실험 기법은 많이 변했고 제가 그걸 한번에 다 따라잡고 연수 복귀 후 관련 연구를 이어 나가는 건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연수 기간 중 멋진 연구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실험실에 차분히 앉아 기본적인 테크닉부터 차근차근 다시 익히면서 한 단계씩 작은 결과부터 얻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저에게는 더 큰 연수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제 연구 관심분야인 말단비대증 신약 연구와 관련된 여러 해외 연구자들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회신 조차 주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 연구자를 받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부족했던 저의 연구 실적 및 능력이 연수지 결정을 힘들게 했던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하며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연한 기회에 흥미롭게 읽었던 말단비대증 신약 후보 물질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한 University of Alberta의 prof. Toru Tateno 교수로부터 본인의 실험실에서 같이 연구를 진행해보자는 회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회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했던 화상 인터뷰에서 필자의 부족한 실험실 경험은 본인이 직접 챙기면서 도움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연구를 같이 진행해보자는 prof. Tateno 교수의 격려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수 전까지 저는 캐나다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캐나다는 겨울이 매우 길고 추우며 수도는 Vancouver나 Toronto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근본 없는 자부심(?)을 가질 만큼 이 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University of Alberta가 위치한 Edmonton이라는 도시도 저희 교실에 오래 전 이 곳으로 연수를 다녀오신 교수님이 계신 관계로 조금 익숙하게 느껴질 뿐이었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물론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에드먼턴 키즈”라는 표현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Edmonton은 Vancouver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30분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도시이며 캐나다를 구성하는 총 10개의 주(Provinces)와 3개의 준주(Territories) 중 하나인 Alberta의 주도(州都)입니다. 캐나다에서 다섯번 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약 1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생산되는 석유의 70%가 Alberta에서 나온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기름값이 꽤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University of Alberta에서의 연수가 확정되면서 출국 및 캐나다 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현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다른 유명한 연수 도시들처럼 기존에 연수를 가셨다가 귀국하는 연구자 분들도 없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에서 저희 식구들이 1년간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해 제 아내는 캐나다 부동산 사이트에 나와있는 Edmonton의 거의 모든 월세 집을 검색해야 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정착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대부분 Edmonton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어려운 건 코로나 팬데믹이었습니다. 당시 캐나다는 입국 시 전수 검사나 무조건적인 격리를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백신 접종 증명서와 입국 전 일정기간 내에 시행한 음성확인서가 있어야 했습니다. 확진자의 경우 입국 10일 이전에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입국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입국일 10일 이내에 확진이 되면 캐나다 입국이 어렵고 들어가더라도 2주 간 격리를 해야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연수를 시작했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매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습니다. 하루 6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 날도 있었고 저희가 출국했던 날도 하루 4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었지요. 당연히 저희 식구들도 이런 코로나19의 파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출국 2주전에 확진이 되었고 아내는 정확히 출국 11일전에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10일 규정을 채울 수 있어 오히려 확진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백신 접종, 확진 확인, 격리 완료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캐나다에 도착해서 보니 저희가 들어오기 직전에 방역 단계가 완화되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University of Alberta 캠퍼스

캐나다로 연수를 가는 경우 비자는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전자여행허가(eTA) 신청을 통해 입국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 학교 입학, 보험 가입 등을 위해서는 Work Permit이라는 것을 따로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급여가 없는 조건으로 받는 Work Permit은 발급이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에서 on-line으로 신청할 경우 발급까지 시간이 수개월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증빙 서류들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벤쿠버 공항에서 바로 Permit을 받기로 결정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대부분 신분이 확실하고 관련 서류가 잘 준비되어 있으면 큰 문제없이 Permit을 받을 수 있다고 출발 전부터 들었지만 만에 하나 받지 못하게 되면 연수 시작부터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걱정에 비행기에서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거기에 예전 미국 유학 시절 수없이 겪었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미국 공항 이민 심사관들을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친절했던 Vancouver 공항의 이민 심사관 및 국경 수비대 직원들 덕분으로 시간은 무척 오래 걸렸지만 무사히 Permit을 받고 Edmonton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은행 계좌 개설, 자동차 구입 등의 일상 생활을 위한 준비와 아이들 학교 전학까지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실험실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Prof. Toru Tateno 교수는 일본에서 수련을 마친 후 University of Alberta에서 진료 및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내분비내과 교수입니다. 저와의 인연으로 지난 2022년 광주 SICEM에 참석하여 뇌하수체 세션에서 본인이 연구 중인 말단비대증의 새로운 내과적 치료제에 대한 데이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출근 첫 날 전반적인 orientation이 끝난 후 바로 진행 중인 실험에 대한 대화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와 달리 실험실 안전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참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흘 동안 on-line으로 엄청난 양의 관련 수업을 받고 매 코스마다 시험을 봐서 모든 과정을 끝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후 말씀드리기 부끄러울 수준의 세포 배양과 같은 기초 실험부터 한 단계씩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맙게도 prof. Tateno 교수는 여러 업무로 바쁘 와중에도 매 단계마다 저의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격려와 함께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말단비대증의 내과적 치료제로 잘 알려진 somatostatin analogues는 종양세포가 가지는 과도한 성장호르몬 분비능의 억제를 주요 기전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tumor cell shrinkage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장호르몬 분비 억제가 주된 효과이기 때문에 약제를 중단할 경우 재발의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Prof. Tateno 교수 lab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뇌하수체 종양 세포의 성장 억제를 유도하면서 정상 뇌하수체 세포는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약제 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신약 후보 물질의 말단비대증 치료제로서의 효용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조건에서의 약제에 대한 세포 반응을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하는 실험 과정은 저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연수 전 prof. Tateno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간이 허락한다면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review article도 같이 작성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경험에 서투르고 거친 손기술(?)까지 합쳐지면서 실험 진행이 생각보다 늦어졌고 prof. Tateno 교수의 개인사정까지 겹치면서 2023년 초부터는 review article을 위한 문헌 수집/정리 및 manuscript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참고로 실험 도중 상상도 못했던 실수를 연발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안하는게 돕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Edmonton 중심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North Saskatchewan River 주변의 여름, 가을 및 겨울 풍경

Edmonton의 겨울은 매우 길고 춥고 눈은 정말 많이 옵니다. 처음 도착한 3월 말에도 기온이 0도 이하였고 4월 중순까지 눈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11월 초부터는 아침에 큰 아이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거의 매일 차 위에 밤새 쌓인 눈을 치워야 했습니다. 눈이 처음에 왔을 때는 저희 아이들이 뒷마당에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이글루도 만들고 서울에서 가져간 눈오리집게로 집 앞에 눈오리를 줄지어 만들어 놓으면서 놀았지만 하염없이 쌓이는 눈을 보며 아이들도 나중에는 지겨워 하는 눈치였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눈이 가루처럼 흩날리고 잘 뭉쳐지지도 않습니다. 집 앞 인도에 쌓인 눈은 각자 알아서 치우지 않으면 시청에서 경고장이 날라오기 때문에 일단 눈이 그치면 더 얼어붙기 전에 나가서 열심히 쓸어내야 했습니다. 눈이 얼고 사람들이 쌓인 눈 위로 계속 지나다니면서 밟게 되면 더 치우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작년 12월경 북미 지역에 엄청난 한파가 몰아쳤을 때 영하 34도(체감온도 영하 42도)의 추위를 처음 느껴봤습니다. 정말 추웠습니다. 그래도 봄, 여름, 가을은 짧지만 무척 쾌적했습니다. 3월말 도착했을 때 가지만 앙상하고 눈이 쌓여 있던 나무들에서 새싹이 돋고 마당에 깔린 잔디가 초록색으로 서서히 변해가면서 집 주변 풍경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위에 높은 건물이나 산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공기가 깨끗해서인지 햇볕은 무척 강했지만 서울의 여름처럼 습하지 않아 그늘 아래서는 시원함이 느껴졌습니다. 저희가 지냈던 집에 에어컨이 없던 이유도 여름을 지내면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보냈답니다. 여름에는 워낙 낮이 길어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밖이 대낮처럼 환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둑어둑 해지는 광경도 신기했습니다.

Kananaskis에서 바라본 록키 산맥
Jasper에서 하이킹 중간에 찍은 사진

한국에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히 실험실에 앉아 공부하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저에게는 매우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잠시 실험실에서 휴가를 받아 처음으로 가봤던 록키 산맥의 웅장한 모습은 놀라웠고 어디를 가나 보이던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평원, 그리고 도시 여기저기에 있는 넓고 한적한 잔디 공원은 서울 생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여유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NHL 아이스하키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전하고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아닌 타지에서 한국 축구 경기 중계를 보면서 TV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소위 국뽕이 차오르던 짜릿한 경험도 잊지 못하겠지요. 무엇보다도 항상 식구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주말엔 근처로 여행을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은 오랫동안 행복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해외 연수를 흔쾌히 허락해 주신 경희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님들께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작은 아이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의 눈 덮인 모습
겨울에 두껍게 얼어붙은 Sylvan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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