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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이야기- 맥주 아는만큼 맛있다 6편
뮌헨 6대 맥주집

천안 엔도내과의원 윤석기

  독일인들의 맥주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인의 소주 사랑과도 비교가 안될 것 같은 이들의 거대한 맥주 자부심은 독일이 근대 맥주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 Beer purity law)의 존재에 그 바탕을 둔다. 이는 독일 맥주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이유이기도 한다.

  독일 맥주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적어도 3천년 이상이라는 데 동의한다. 3천년 전은 청동기 시대로 오늘날 독일을 구성하는 슈바비안, 바바리안, 색슨, 알레만 같은 원시족이 아직 '게르마니아(오늘의 독일)'로 불리기 전인데 이들이 모두 이미 맥주 양조를 하고 있었다. 또한 독일 맥주에 대한 첫 역사적 기록은 독일 원시민족에게 로마제국 지배자인 타키투스가 지은 '게르마니아(Germania)' 에서 게르만족은 보리 음료를 많이 마시고 잘 취하는 민족으로 그 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때로는 오크 나무 껍질 같기도 하고 때로는 황소의 쓸개 같다고 묘사했다.

  영화 「토르」의 배경이 된 게르만족 신화집 「에다 이야기」에 '맥주를 마시고 하는 말은 진심이다' 라는 말이 있다. 뮌헨의 맥줏집에서는 나이와 성별, 인종, 지위를 뛰어넘어 처음 보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필자도 과거 뮌헨의 맥줏집을 혼자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잔의 맥주를 마시면서 옆자리의 사람과 눈인사를 나누게 되고 "Prost ! Prost ! Prost !(건배! 건배! 건배!)" 를 외치고 바로 친구가 되었다. 뮌헨의 맥줏집은 처음 만나는 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세상의 근심 걱정을 잊고 웃을 수 있는 곳이 된다.

  필자가 처음 독일 뮌헨을 방문 했을때 맥주를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이곳이 바로 지상의 천국이라는 사실에 흥분하였다. 그 곳은 바로 뮌헨을 대표하는 여섯 개 맥주 회사가 운영하는 맥주집(keller) 이었고, 그곳들을 방문하여 아직 해가 중천에 있는 이른 오후부터 별을 헤는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뮌헨의 천국을 만끽하였다.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는 맥주 순수령을 발표한 빌헤름 4세의 손자 빌헤름 5세가 1591년 뮌헨 한복판에 세운 왕궁 직영 맥주 공장이다. 처음에는 왕과 귀족만이 출입할 수 있었지만 1830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오늘날 뮌헨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최초에 일반인들은 줄을 서서 맥주를 산 뒤 서서 마셔야 했고 더 마시려면 잔을 씻은 뒤 다시 맥주를 사서 마시는 구조였으나 18세기 말부터는 일반 시민들도 테이블에 앉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상설 맥줏집이다.

  유명한 고객들이 호프브로이를 방문했는데, 그 중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시시공주) 여황제, 뮌헨으로 망명한 블라드미르 레닌과 그의 부인 크룹스카야(Nadezhda Krupskaya)가 있다. 레닌은 이렇게 썼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특별히 사랑스럽다. 이곳에서는 훌륭한 맥주가 계급 간의 모든 차이를 없애 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호프브로이를 사랑했던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일 것이다. 그는 1921년 11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새로 창당된 나치당, 즉 국가사회주의 노동당의 대중 연설을 이곳에서 했으며 나치당 우파와 좌파가 노선 차이로 도자기로 된 맥주잔을 무기로 이용해 커다란 싸움이 터졌고, 자신의 책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이 사건을 애정 어린 어조로 회상했다.

   호프브로이 맥주의 특징은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다. HB가 새겨진 왕관 마크를 1879년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후 왕관 마크 하면 호프 브로이를 연상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왕관은 왕궁직영 맥주라는 상징도 있지만 맥주잔에 맥주를 70% 따르고 30%는 반드시 왕관처럼 거품을 올려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평상시에는 도수 5.1의 맥주를 판매하지만 옥토페스트 축제 때는 도수 6.3의 맥주를 출시한다.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 Keller)는 저자가 뮌헨의 6대 하우스중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뮌헨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이내에 도착 가능한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며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맥줏집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라는 말을 남긴 성인 아울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세운 아우구스티너 수도회가 1328년 뮌헨에 정착하여 맥주 양조업을 시작하였고 양조장이 성장해 현재는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회사가 되었다.

  19세기초 독일을 점령한 나폴레옹의 법령에 따라 더 이상 수도원에서 양조업을 할 수 없게 되자 1803년에 민간에게 넘어갔고, 1829년 요제프 바그너가 인수해 '아우구스티너브로이 바그너 맥주주식회사' 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너 켈러는 목재를 두르고 사슴 조각상을 곳곳에 설치해서 바이에른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실내와 실외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비어가르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옥토버페스트에서 아우구스티너는 9,000석 규모의 천막 아우구스티너브로이(Augustiner-Bräu)와 4,000석 규모의 피셔프로니(Fischer-Vroni)를 세우고 알코올 농도 6퍼센트인 아우구스티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예수가 부활하기전 고통받은 사순절 기간동안 수도사들은 금식을 하여야 했고 교황이나 주교로부터 액체로 된 물이나 음료만 마실 수 있도록 허락 받았는데 배고픔의 고통을 덜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시는 빵'인 맥주가 인기였다. 수도사들은 굶주림에서 자신들을 구원한 이 소중한 맥주의 이름을 '우리를 구원한 구세주 맥주'라는 뜻으로 'Sankt Vaterbier'로 불렀고 이를 줄여 구세주란 뜻의 '살바토르(Salvator)' 라 이름 지었다.

   파울라너의 양조역사는 '살바토르' 맥주와 맥을 함께 한다. 바바리아주의 스트롱 비어의 역사는 하면발효의 도펠복을 개발한 파울라너 수도사들로부터 시작된다. 'Paulaner Brauerei' 는 1634년 독일 뮌헨에서 설립된(최초의 기록 기준) 양조장으로 성 프란치스코 파울라 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되었다고 한다. Paulaner Salvator 는 최초의 Doppelbock 으로 기록되어 있다. 380년 이상 오리지날 레시피에 의해 양조되어 왔으며,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온 도펠복의 원조이자 조상이다. 본래 이 맥주는 파울라너 수도사들이 단식을 해야할때 영양분을 조달하는 용도로 양조되었고 훌륭한 품질과 맛은 수도사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령대를 불문하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를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사들은 칼 테오도르 섭정공의 시음을 거쳤고, 1780년 승인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파울라너 수도승들의 유구한 전통을 따라, 봄시즌이 오면 파울라너는 스트롱비어의 첫번째 배럴을 녹커베르그에서 오픈한다. 물론 오늘날에 까지도 첫번째 배럴의 첫 샘플은 바바리아주의 주지사를 위해 서빙된다. 중요인사들이 풍자적인 우스개꺼리가 되기도 하지만 정치계 인사들이 페스타벌에 참석한다, 그것이 이곳의 전통인 것이다.

  나플레옹의 침략으로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것이 금지되자 1799년 양조업자 프란츠 크사버 차허를(Franz Xaver Zacherl)이 파울라나 수도원의 양조장을 사들였고, 파울라너는 슈타르크비어의 전통을 이어받은 살바토르 맥주를 생산했고 그 결과 오늘날에도 맥주를 통해 구원 받길 바라는 맥주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뮌헨 중심부의 북조에는 청동색 지붕의 전통적인 바이에른 양식의 작은 궁전 같은 맥주집이 눈에뛴다. 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황금색 사자가 노란색 벽면 곳곳에 새겨져 있는 뢰벤브로이 켈러(Löwenbräu Keller) 다. 14세기 뮌헨에서 양조를 시작한 뢰벤브로이는 19세가 브라이 가문이 인수하면서 뮌헨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뢰벤브로이는 1997년 슈파텐 프란치스카너(Spaten-Franziskaner-bräu)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이 되었다. 뢰벤 브로이는 '사자 양조장'이라는 의미이고 옥토버페스트에서 꼬리를 흔들며 포효하는 거대한 사자가 그려진 텐트를 운영한다. 뢰벤 브로이 맥주는 다른 맥주에 비해 부드러우며 홉의 향기와 고소한 맥아 향이 어울어져 담백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옥토버페스트 때 가장 화려한 텐트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하커 프쇼르(Hacker Pschorr)는 1417년 문을 열었다. 전용 켈러인 알테스 하커하우스(Altes Hackerhaus)는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 광장 바로 옆에 있다. 18세기 레스토란 주인 딸 마리아 테레지아 하커(Maria Theresia Hacker)와 양조장 직원 요제프 프쇼르(Joseph Pschorr) 가 결혼하면서 하커 프쇼르 브로이로 발전하였다. 1841년 요제프 프쇼르가 사망하자 두아들 게오르크와 마티아스가 회사를 하커 브로이와 프쇼를 브로이 분리 운영하다가 1972년 다시 합쳐 서로 교차하고 있는 쌍도끼 문장으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하커 프쇼르가 되었고 현재는 파울라너 맥주에 합병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커 프쇼르 켈러는 새로운 장소로 이전해 더 이상 테레지엔 광장에서의 예전 정취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독일어로 부삽이라는 뜻의 슈파텐(Spaten)은 1397년에 설립돼 맥주 양조업을 산업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세기초에 이 양조장에서 일했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기술자와 함께 라거 효모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그때 발명한 냉동기를 이용해 저온 숙성의 하면 발효 맥주 제조법을 확립하였다. 또한 맥아를 태우지 않고 볶는 기술을 영국으로부터 들여와 맑고 향이 진한 슈파텐 맥주를 생산하였다. 옥토버페스트를 위한 특별 맥주인 메르첸을 처음으로 출시한 곳도 슈파텐이다. 이러한 이유로 옥토버페스트 첫날 뮌헨 시장이 큰 오크통의 잠긴 맥주 꼭지를 망치로 내리쳐 맥주를 받아 마실때 반드시 슈파텐 맥주를 사용한다.

  1922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생산하는 프란치스카너를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가 되었고 1997년 뢰벤브로이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이 탄생했고 뮌헨을 중심으로 한 내수 시장에 주력하였으며 최근에는 국내 대형 마트에서도 슈파텐 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마실수 있다. 슈파텐 맥주는 약간 어두운 황금빛을 띠며 입안에서 청량감과 목넘김이 좋으며 약간 레몬의 풍미를 가지고 있으며 쌉싸름한 뒷맛을 가지고 있다.


  와인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면 맥주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다. 빈티지, 마리아주가 무엇인지 몰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도시의 화려한 곳이든 뒷골목의 허름한 주점이라도 상관없다. 오늘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맥주는 바로 그런 음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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